디지털시대의 아날로그 디자인
과거에는 자동차 충돌시의 안전도는 실제의 자동차를 이용한 충격 테스트에 의해서만 확인될 수 있었다. 교량이나 건물을 지을 때, 지각 변동, 태풍, 해일에 의한 내구성을 분석하기 위해서는 축소모형을 이용하여 자연상태와 동일한 인공조건을 만들어야만 했다. 그리고 전자(電子)나, 물질의 구조 분석은 과학자가 구슬과 막대기 등을 이용하여 일일이 구성해야만 가능하였다. 광고 제작을 위한 모델의 화장상태, 촬영상의 조그마한 실수 등의 이유로 수없이 되풀이되는 촬영을 인내로 버텨야만 했다.
그러나 지금은 건물, 교량의 구조나 자동차의 충돌 상태는 물론 조종사의 비행훈련까지도 컴퓨터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으로 대체되고 있다. 여성 광고 모델의 다리 늘리기나 얼굴의 티 없애기, 화장 색조의 조정 등은 이미 일반화되었고, 생전에 한 번도 뵌 적이 없는 증조부님과 내가 사진 속에나마 같이 있을 수 있을 수 있으며,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남극의 펭귄무리의 사진 속에서 나를 발견할 수도 있다. 그리고 “쥬라기공원” 영화 한 편이 국내 자동차 수출액보다 많다고 하는 충격적인 보도와 함께 애니메이션산업이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고층빌딩에서 주인공이 추락하는 장면, 사람이 뒤집어쓰고 연기해야 했던 공룡, 우주선의 등장, 비행기 등의 폭발 등의 장면을 만들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거나, 세트 제작을 하지 않고도 실내에서 컴퓨터에 의해 실제보다도 더욱 완벽한 영상이 만들 수 있는 것이다. 텔레비전 MC도 실제의 인물이 아닌 컴퓨터에 의해 만들어진 가상 모델이 등장하여 점차 완벽한 조건을 갖게 될 것이다. “아놀드 슈왈츠제네거” 주연의 “토탈리콜”은 가상현실과 실제 현실과의 혼란을 주제로 다룬 영화로서 보는 사람마저도 혼란스러운 이 영화는 단지 영화의 이야기로 끝나지 만은 않을 것 같다.
이와 같이 컴퓨터로 만들 수 있는 다양한 기술은 더욱 발전되어 인류역사상 전혀 경험하지 못한 그리고 현실세계와는 비교할 수 없는 무한대의 새로운 세계를 펼쳐주기 시작했다. 가상현실(Cyber Space or Virtual World)이 바로 그것이다. 가상현실은 사람이 직접 작업할 때의 위험 요소를 완전히 배제할 수 있으며, 사람이 갖는 어떠한 상상의 세계도 구현 가능하다. 실제 상황에서의 시뮬레이션보다 비용이 절감되며, 조건이나 방법의 변화에 대해 쉽게 적응할 수 있다. 한사람의 생각이나 꿈을 제3자에게 쉽게 설명할 수 있고, 시간과 공간을 초월할 수 있다. 이렇듯, 다양한 효과를 제공하는 “가상현실”은 현실세계(Real world)에서는 추구할 수 없는 많은 것을 제공할 수 있다.
그러나 가상현실은 제약조건이 없어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든 표현 가능하기 때문에 표현 강화를 위한 필요이상의 방법들이 동원되어 자극적인 내용으로 발전하기 쉽다. 가상현실은 스위치가 켜져 있는 동안에만 유효하고, 가상공간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사전 조작과 준비작업이 요구된다. 현실세계와의 혼돈을 야기 시킬 수 있으며, 대인관계나 환경과의 친숙성을 낮아지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가상현실이 갖는 효과 뒤에는 그에 못지 않은 문제점이 있음을 주시해야 한다. 특히, “가상현실”은 사람이 갖는 많은 감각 가운데서도 시각과 청각만이 중심이 되어 이루어진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즉, 우리의 균형 있는 감성의 발전을 저해시킬 수 있으며, 현실세계와의 상이점은 감성적인 혼란을 야기 시킬 수 있다는 점에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것이다.
현실세계를 구성하고 있는 것은 “物”, 즉 상품이다.
“物”이란 무게, 부피, 질감, 색상 등을 포함하는 자연적인 것과 인공적인 것이 포함되는 모든 것을 총칭한다. 그 중에서도 인공적인 “物”은 사람과의 접촉에 의해서 생명력을 갖게된다. 즉, 물건을 구입하거나 사용할 때는 만져 보고, 두들겨 보고, 열어 보고, 조작하면서 상품과의 유기적인 관계를 형성해가기 때문이다. 지금까지의 상품들을 유심히 살펴보노라면, 시각적인 요소에 중점을 두고 개발되어 왔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최근의 첨단기술 또한 시각적인 요소를 중심으로 우리 생활에 변화를 주고 있다.
광폭(Wide) 텔레비전 세트, 디지털 카메라, DVD, GPS, 퍼스널 컴퓨터 등이 그러하다. 그리고 우리의 생활과 밀접한 상품들에 있어서 디자인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는데, 실제로는 형태, 색상 등의 시각 요소만을 지칭하는 경우가 많다. 또한, 상품은 우리의 감각이나, 감성보다는 제조자의 입장에서 보다 경제적으로 만들 수 있는가에 모든 초점이 맞추어지고 있기 때문에 자연히 아무런 느낌이 없는 상품으로 개발되어질 확률이 높다.
이 같은 상황에서 앞으로 우리의 현실세계에 자연물보다 인공물이 더욱더 늘어나고 “가상현실”이 우리 생활에 밀착될수록 우리의 감성과 감각의 균형 있는 발전의 기회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
따라서 우리의 감성이 메마르지 않고 풍부한 경험을 가질 수 있는 아날로그(Analog)적인 환경이 필요하다. 아날로그 개념의 환경이란 냉정한 디지털문화의 대표적 결과물인 가상현실에서 소홀해 질 수 있는 우리의 다양한 감성, 특히 촉감을 강화시키기 위한 것으로 항상 자연을 느낄 수 있는 환경을 의미한다. 자연만큼 다양하고 부드러움을 갖는 것은 없기 때문이다.
우리 생활을 구성하는 “物”은 대부분 상품으로 볼 수 있고 상품은 다양한 재료로 구성된다. 따라서 상품을 통해 자연을 느끼게 하기 위해서는 자연소재가 주는 다양한 질감의 활용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다. 그러나 상품을 구성하는 모든 부품을 자연재료로 적용할 수는 없기 때문에 사람과의 접촉이 이루어지는 부위를 중심으로 적용하며, 시각적인 느낌 또한 매우 중요하게 고려되어져야 한다.
상품에 적용되는 소재로서 더 이상의 무절제한 플라스틱의 남용을 지양하고 돌, 나무, 물 등의 자연소재나 자연소재의 느낌을 갖는 인공소재(첨단소재의 개발방향도 얼마나 자연적인 것과 유사할 수 있는가에 성공여부가 달려있다)를 적절히 사용하고, 각각의 소재가 갖는 특징을 솔직하게 나타내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신비(?)에 싸인 듯한 Black Box가 아닌 누가 보아도 쉽게 알 수 있는 Glass Box개념의 상품개발 기획이 반드시 수반되어져야 한다.
즉, ‘物’은 자연에 바탕을 둔 인간친화 개념의 감성중시형 아날로그 모습으로 발전되어야 하는 것이며, 세계 유명 기업들이 목표하는 상품개발의 궁극적인 목적이기도 한 감성중심의 상품개발에 대해 우리도 이제부터는 본격적인 고민을 시작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