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것에 길이 있다
우리는 못을 박을 때 예리한(?) 눈썰미로 위치를 선정하고 못을 손으로 쥐거나 펜치 등으로 잡은 후 망치로 두들겨 박는다. 그러다 보면, 못이 튕겨나가기 일쑤이고 못쓰게 된 벽면의 못 자국을 피해 다시 시도해 본다. 운 좋으면 한두 번에 목표를 달성할 수도 있다. 그러나 최근의 벽면은 단열과 경량화 등을 목적으로 개발된 것이 많다. 따라서 못이 잘 박히지 않거나 박혀도 힘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의 인내와 손가락의 희생을 더욱 필요로 한다. 또한 우리의 집이나, 사무실, 강의실에서 실패한 못 자국들이 그 흉측한 모습 그대로 방치되어 있는 상태들을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조금은 안전하고 쉽게 못을 박을 수 있는 장치들이 개발되어 예전보다 좀 나아지기는 했지만, 아직도 우리에게는 별로 대수롭지 않은 일상 생활 속에 자리잡은 우리의 습관이다.
힐티(HILTI)라는 회사의 못을 박는 전문공구로서 붉은 색상의 마치 권총같이 생긴 것이 있다. 지금은 공사 현장에서 많이 볼 수 있는 도구이지만 나는 지금부터 약 17년 전에 처음 접하게 되었다. 당시에는 화약을 장전한 후 못의 종류와 못이 벽에 얼마나 박히게 할 것인지를 조절하여 벽이나 바닥 등에 대고 쏘면 목표했던 대로 정확하게 박히는 그 제품이 매우 신기하게 느껴졌다.
더욱 놀라움을 금치 못했던 것은 힐티라는 회사는 서로 다른 물건과 물건을 결합시키는데 필요한 도구와 장비만을 전문으로 생산, 판매하는 회사로서 전세계적으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굴지의 회사라는 점이다. 이 회사는 일상적인 못을 벽에 박는 것에서부터 교량 상판의 결합용등 어떤 종류의 결합도 정확하고 안전하게 완성시킬 수 있는 세계 유일의 회사인 것이다.
힐티사와 비교되는 또다른 회사는 스카치라는 테이프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쓰리엠이다. 이 회사는 서로 다른 물건을 결합시킨다는 측면에서 힐티와 동일하다. 그러나 힐티와 같이 못이나 볼트 등을 이용하지 않고 접착제를 이용한다는 점에서 차이점을 갖는다. 일상적인 접착 테이프에서 도로표지판, 미끄럼방지용 바닥재 등을 포함하여 자동차에 보이지 않게 적용되는 수많은 접착제등 그 용도만큼이나 제품수 또한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이렇듯 세계 굴지의 힐티와 쓰리엠사는 우리가 못을 박으면서 투덜대기만 했던 일상적인 문제점을 소홀히 넘기지 않았다. 일상적이고 사소할지도 모르는 문제점에 대해 보다 쉽고, 완벽하게 처리하겠다는 의지와 노력이 이 회사들을 독보적인 존재로 자리 매김을 하였다는데서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리는 작고 사소한 부분에 대해서는 그다지 관심을 갖지 않는 대륙적 기질(?)이 있으며 어떤 문제에 대한 지속적인 해결 노력보다는 새로운 것만을 추구하는데 익숙해져 있다. 그리고 항상 빨리 빨리 개발해야만 할 것같은 조급함은 우리를 대충주의자라는 오명을 가져다주었다.
그 결과 우리 상품에 대한 신뢰성은 낮아지고 가격적인 경쟁력마저 상실됨에 따라 경제적인 위기감이 우리를 긴장시키고 있다. 그러한 문제점 중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바로 상품의 품질이다. 상품의 기능이나 기술력의 차이보다는 마감처리의 소홀함(?)에 의한 결과라는 것은 이미 오래 전부터 확인된 내용이다. 최근 들어서는 디자인의 낙후성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 또한 점차 높아지고 있다. 그런데 이 두 가지 내용은 상호 연계성이 깊기 때문에 디자이너의 역할에 대해 다시 한 번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디자인은 상품의 부가가치를 높이는데 목적이 있다. 상품의 부가가치중 가장 기본적인 것은 아마도 끝마무리일 것이다. 상품은 최소한 3개 이상의 부품들이 결합되어 이루어지기 때문에 디자이너가 제시하는 훌륭한 조형은 이들 부품의 성형과 결합방식에 의해 좌우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따라서 디자이너는 부품의 생산 방식, 부품간의 결합 구조 등에 대한 철저한 검증과 노우하우를 쌓아가야 한다.
물론, 추가 표면처리나 소재의 선택, 색상, 그라픽 등의 모든 디자인 요소들 또한 철저한 관리 작업이 뒷받침되지 않는 한, 디자이너의 의도는 생략되기 일쑤이며, 상품의 품질 또한 저하될 수 있다.
우리는 엔지니어가 아니기 때문에 에지니어와 같은 노우하우를 쌓을 수는 없다. 그러나 디자인은 프로듀서 또는 코디네이터로서의 기능을 갖기 때문에 상품 기획에서부터 시장 상황에 대한 정보의 피드 백까지의 전 과정에 참여하여 상품의 품질을 높이기 위한 노력을 해야한다. 특히, 상품 개발 시에는 더욱 적극적인 자세가 요구되는데, 사출 성형물의 취출 구배의 관리, 부품간의 결합 구조, 볼트에 의한 결합시 그 위치와 형상 그리고 볼트의 종류, 부식 표면처리의 종류와 각 부품간에 표면차이 관리방안등 상품의 품질과 관계된 것들이 대상이 된다. 디자이너가 직접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은 해결하고 그렇지 않은 것은 효과적으로 해결될 수 있도록 프로듀서로서의 역할이 필요하다.
디자이너는 디자인 의도를 정확히 상품으로 연계시키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에 구애받지 않고 엔지니어와의 선의의 싸움에서 이겨야 한다. 물론, 속임수와 협박적인 것들은 제외해야 하겠지만...
이러한 방안들은 우리에게 많은 스트레스를 준다. 그러기 위해서는 폭넓은 지식과 남다른 노력으로 힘을 길러야 하는 것이다. 또한 어디서부터 어느 정도까지의 노력과 지식이 필요한 것인 지부터 혼란을 일으킬 수 있다.
그러나 문제 해결 방법은 간단하다. 생활에 이용되는 모든 상품들이 우리의 자료이며, 정보이기 때문에 가장 많이 사용하고 있는 간단한 상품부터 분석해보면, 생각보다 쉽게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물론, 상식 선에서 알 수 있는 것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상품을 분해하여 자세히 관찰하는 것만으로도 많은 지식을 얻을 수 있다. 혹시 특수 기법, 특수 재질 등이 있는 경우에는 전문가에게 문의하거나 전문 서적을 통해 확인해 보는 것이 좋다.
펜을 예로 들어보자, 펜에는 금속, 프라스틱등 4-5가지의 서로 다른 재질로 구성된다. 또한 몸체, 펜, 뚜껑, 잉크를 담는 부품등 대개 5-10개 정도의 부품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각 부품의 가공 방법과 결합 방식이 서로 다르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에는 인쇄나 도장 등으로 추가 마감처리들을 적용하고 있다. 이들 요소들은 모두 펜이라는 기능에 충실하도록 구성되어 있으며, 그에 따라 각 부품의 재질과 가공, 결합, 특수 효과 등이 결정된다. 즉, 몸체를 구성하는 플라스틱의 경우에는 사출 성형, 금속은 프레스 또는 주조, 인쇄는 실크 프린팅이나 전사 방법 등이 적용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플라스틱 사출 성형물의 경우에는 효과적인 금형의 파팅 방법, 나사 산의 성형, 쉽고 안전한 뚜껑과 몸체와의 결합 구조, 표면처리 효과, 기본 살 두께, 금형으로부터의 취출 방법 등등 사출 성형 물이 가져야 하는 대부분의 내용을 모두 담고 있다. 따라서 펜의 플라스틱 사출 성형물의 가공기법과 내용에 대해서 충분한 지식을 갖는다면 플라스틱에 대한 기본적인 디자인 조건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펜에 적용된 다른 재질의 가공 기법과 특수처리 기법 등에 대한 조사하고 펜 이외에 우리 주위에 있는 상품들중 몇 개 정도를 같은 방법으로 분석해 본다면, 디자인에 필요한 기본 노우하우를 축적할 수 있게 된다. 이처럼 우리 주위에는 많은 자료와 정보가 무수히 많기 때문에 어떤 상품의 디자인 개발을 진행할 때의 궁금한 내용은 주위의 상품 몇 개만 풀어 헤쳐 보면, 쉽게 답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디자인은 이러한 내용을 아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상품 개발 시에 효과적으로 적용하고 관리할 수 있어야 한다. 예로써 사진(1)의 몸체를 구성하는 플라스틱 성형 물인 상하 2개의 부품에는 효과적인 디자인 관리의 결과가 잘 나타나 있다. 각각의 성형 물은 금형 구조에 의해 어쩔 수 없이 나타나는 파팅 라인을 완벽한 직선으로 관리하고, 상하 부품을 나사산 구조에 의해 결합시킬 때 각각의 파팅라인이 동일한 선으로 보이게 하기 위한 구조(나사산 끝에 stopper를 적용하여 잠금 위치를 정확하게 관리)를 적용하였다. 따라서 디자인의 마이너스적인 요소를 정교한 이미지로 재창출하여 상품의 부가가치를 높인 좋은 예이다.
디자인은 기존의 기술을 그대로 이용만 하는 단순 실행자로서가 아닌, 상품의 품질을 개선하고 디자인의 효과를 최대화하기 위한 선도자로서 기존 기술을 어떻게 활용하고 관리할 것인가를 고민해야한다.
즉, 디자이너는 자신의 캐릭터를 바탕으로한 독창적인 디자인의 개발도 중요하지만 단지, 멋있는 컨셉과 디자인으로 클라이언트를 잘 설득시킨다고해서 그것이 좋은 상품, 좋은 디자인이 되는 것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디자이너가 의도한 대로 정확히 상품화시킬 수 있는 노력과 힘이 보다 중요한 것이며, 그러기 위해서는 디자인 개발 초기부터 상품의 생산 및 판매시점까지 모든 내용을 철저히 관리해야만 한다.
디자이너는 할 일이 많고, 그 많은 일들이 모두 그리 쉬운 것들은 아니다. 그러나 상품의 품질을 결정하는 가장 기본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서 그러한 요소들은 반드시 관리되어야 하는데 그 해결의 실마리가 아주 작고 사소한 것들로서 자칫 소홀해지기 쉽다. 따라서 대충적인 우리의 잘못된 습관을 바꾸고 작은 것 하나씩 모두 완벽하게 해결하려는 끈질긴 노력이 절실하게 필요한 시점이다.